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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드소마>, 190810 좋은정보
    카테고리 없음 2020. 2. 17. 21:21

    스포하 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6월부터 벼르고 벼르다 거의 빠듯하게 관람한 미드 소마. 앨리 아이스터 감독의 전작 유전이 오랜만에 찾아온 웰메이드 호러 영화라 호러 장르 팬에게 대히트를 친 데다 백야와 공포를 결합한 설정도 드물어 개봉 전체 터의 기대치가 너무 본인답게 높았던 것 같다. 지금은 실 관람객의 평점이 7.5점대를 배회하는 수준에서 본인도 직접 본 후에는 사람들이 왜 얼빠지고 한 것인지 하나로 이해되기도 했지만 탄탄한 테마로 암시적인 상징들이 많은 영화가 너무 나쁘지 않고 있어 개미 어린이 스타식의 구성과 범절에 너무 너무 만족했습니다.공포영화에 너희가 무약으로 돈 주고 보는 하나는 정 내용으로 드문데(그런 이유로 <유전>도 여태껏 보지 않았다) <미드소마>는 무섭기보다는 마음이 더 심각하게 느껴지는 영화였다. 고어는 나쁘지 않고 괜찮았다.공포에 정면으로 맞서면서 보는 사람이 설마 하는 예측 장면 등 너로 화면에 본인인 것처럼 극을 진행하지만 그래도 뻔한 연출이었다. 홀이 마을에 진입하기 전 대니(플로렌스 퓨)의 절망의 원인이 된 배경을 설명하는 오프닝부터 서사 조각을 차곡차곡 쌓아올렸고, 각각의 조각이 부족하고, 거인의 뒤틀린 부분 없이 결말로 깔끔하게 이어지는 화종 장인 정신까지 엿보게했다. 물론 "그렇게 완성된 결내용이 기대했던 것만큼 충격적이고 신선하지 않아 실망했다"는 평가가 많은 듯하다. 그것은 아마도 홀이 외부의 관찰자 하나뿐인 우리가, 마을의 신앙과 규칙이 너희들의 무기괴하다고 느껴 대니의 시선에 충분히 이입하지 못했고, 여전히 바깥의 상식으로 그들을 경원하고 공포의 요소를 찾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함께 울고 함께 고통을 느꼈던 마을 사람처럼 대니의 정신과 온전히 공명할 수 있다면 울 sound로 시작해 웃음 sound로 끝난 대니의 서사에도 충분한 카타르시스가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앨리 아이스터는 다만 하본인의 장면도 함부로 종이 본인이 가지 않는다.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이것저것 탐구하는 조쉬와 펠레의 대화를 통해서도 마을 그림을 통해 많은 것을 힌트로 남겨준다. 너희들은 노골적으로 암시하는 '발라다'에 조금은 쉽고 지루하게 느껴졌어요.하지날에 거꾸로 걷다가 꺾은 꽃을 베개 밑에 두고 자면 마 sound에 들어가는 남자와 맺어지는 인연인지 안다는 오래된 북유럽 전설에 자신의 신체 하나를 그 남자의 sound식에 넣어 먹이면 이어진다는 민간신앙이 결합된 이야기는 초반에 너로 하여금 그림에 비친다. 이것은 갓 장성한 마야와 외부인 남성 크리스티앙의 운명을 암시한 그림이었다. 각 하나 8년이 걸렸고 성장-순례-하나 군-스승의 4절기를 지난 뒤 72세가 되면 어쩌냐는 질문에 펠레가 목을 손으로 그은 척하며 죽 sound를 당당하게 예고하기도 합니다. 물론, 아직 도시의 기준에 의견을 개진했던 친구들은, 전체의 농후한 것처럼 웃어 넘겼지만. 새하얀 햇살과 새하얀 절벽에서 새하얀 옷을 입은 마을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죽을 차례가 된 두 노인이 실내용으로 뛰어내리는 장면에서 밖과 호르가 마을 내부의 질서는 빗나간 사람으로 상식은 모두 sound 차이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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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부락에서 모든 구성원은 각자의 생아의 주기에 따른 역할을 한다. 펠레는 일종의 공급자 역할을 하고 있다. 부락의 딸들에게는 남자를, 축제에는 제물을, 자신을 위해서는 여자를 데리고 온 것이다. 잉그마르가 코니와 사이먼을 데려온 것도 같은 이유다. 하나 8세에서 36세의 시기가 인생의 주기상의 여름인,'순례'의 시기라고 말했지만 쟈싱눙 그 순례는 바깥 세계에 자신에게 가서 제물과 재생산용 사람들을 데려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했습니다. 그 시기는 여성의 가이다와 딱 맞을 수도 있을 것이다. 여름철 여성들이 아이를 재생산해 부락에서 케어 노동을 수행하는 동안 남자들은 외부에서 침입자를 유혹해 데려오는 대개의 분업이 이루어졌을까. <겟아웃>에서는 늘 새로운 몸의 주인을 유혹해온 아미티지 가문의 소리모가 연상되는 서사이기도 하다.만약 코니, 사이먼, 마크, 조쉬가 공동체에 녹아드는 것으로 판별됐다면 희생양이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의견도 있다. 그렇게 되면 9명을 채우기 때문에 마을 공동체에서 더 많은 순교자를 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대니를 제외하고는 모든 외부인이 의식을 목격해 엄청난 혐오감과 공포를 표헌했고, 자신(코니와 사이먼), 제의와 문화 자체를 무시하고 훼손했으며, 자신(마크), 유무형의 문화적 재산을 탐해 훔치려 했다(조쉬). 그렇게 시험에 떨어진 사람들, 그리고 재생산 목적의 정자를 공급함으로써 더 이상 쓸모없는 사람들(크리스티안)들은 제물로 만들어 불에 태우고 완벽하게 동화시켜 그들의 일원이 된 대니는 함께 울고 위로하는 것이었다.결말 이후에 펠레와 대니가 짝으로 연결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펠레는 대니가 부모와 동생을 잃은 시점부터 본격적으로 그녀를 영입하겠다는 계획을 생각해 낸 것이 아닌가 싶다. 펠레는 부모도 2차례 대니에 들게 하는데 아마 그의 부모는 인구 마루처럼 자신을 공물로 한 것이다. 상실을 통해 새로운 식육이 생긴다는 것을 이미 경험했고, 광신도처럼 홀가의 질서를 믿는 펠레로서는 대니를 자신의 부락으로 꼭 데려가고 싶었는지 모른다. 아예 아내의 목소리부터 대니를 싫어하는 마크와 조쉬와 달리 펠레는 그들의 그룹 험후에 일절 끼어들지 않는다. 술집에서도 크리스티안의 집에서도 펠레만이 침묵을 지키며 관조할 것이다. 대니의 의존증을 비난하지 않고, 대니와 크리스티안의 불안정한 관계에 대해 말을 잇지 않는다. 중요한 부분은 아닌데 이 모드에 호감이 있었나봐? 아니면 여사제가 크리스티안과 마야의 조합에 대해 조언한 것처럼 점성술적으로도 잘 맞다는 진단을 이미 받아놓고 대니를 자신의 짝으로 점쳤을까. 어느 쪽이든 크리피한 로맨스였다. 결말 대니는 시험에 허락을 하고 메이 퀸에까지 이르고, 펠레는 뛸 듯이 기뻐하며 (자신의 친국인 크리스티안이 곧 어떻게 될지 알면서 그는 무시하고) 다니에게 키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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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면 대니의 시점에서는 이 모든 절차가 결국 행복을 찾는 이 이야기 정도다. 그 과정이 인간성을 잃어가는 기묘한 자연화든, 남자친구 국가에 대한 복수극이든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대니와 그녀의 새로운 대가족들은 인간계의 룰, 도시의 룰로서 의문을 느끼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실 대니는 거짓 없이 대식구를 잃은 1장면에서 그들과 같은 뿌리로 돌아가겠지 이 끊임없이 암시된다. 버섯 차를 마시고 책 1환각이 손등에 풀이 자라거나, 5월의 여왕을 뽑는 춤을 추는 때는 혼란의 정신으로 발밑에서 풀이 자라는 것을 목격한 것도 있습니다. SOnd에는 외지에서 온 사람의 누구보다 잘 적응하고 축제 이상에 11년도 참가하고 있습니다. 대니는 가끔 고개를 갸웃거리고 괴로워하는데, 그녀가 제의 순간마다 그녀의 부모님의 죽음 sound를 씌워 트라우마를 겪기 때문이지 그녀는 마을의 제사의식 자체를 혐오해서가 아니다.대니는 극중 대가족이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도저히 보통은 넘기지 못하고 혼자서 발작 수준의 울 sound를 견뎌냈는데, 아이인 크리스티안은 그런 증상을 전혀 몰라요. 그녀의 울음과 그의 평온함은 거의 별개의 현상이었고 거의 매일 두꺼운 벽을 사이에 두고 있다. 데니는 결국 크리스티안을 아홉 가지 제물 중에서 마지막 제물로 삼음으로써 그를 버리고 마을에 합류합니다. 이미 이웃 사람들과 외부인이 4:4로 비율이 설정된 상황에서 메익이은잉다니ー이 한명의 희생을 더 뽑아야 했는데, 마을에서 뽑기로 선택된 익명의 인간, 그녀와는 전혀 연고도 없는 특별한 의미가 아닌 인간을 선택하지 않고 4년 이상 사귄 아이인을 죽이기로 했다. 그것은 크리스티안이 너희 집처럼 생각되느냐는 펠레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자 그녀의 슬픔에 공감할 수 없는 차가운 아이에 대한 담담한 포기다. 크리스티안의 냉정함은 그녀가 원래 속했던 세계 1위의 냉정과 다름없다. 크리스티안은 대니에게 남성-도시-문명으로 확대되는 의미를 지닌 상징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대니는 그 반대인 마을 공동체, 비상식적이고 비문명적인 전통에 속하는 것을 선택해요.​ ​의 호르가 마을 자체에 대한 소견에 1의 거대한 유기체처럼 느껴진다. 아내 sound에는 그들의 의식을 지배하는 것이 샤머니즘을 도구로 한 파시즘, 종교의식을 이용해 제련을 거친 모드주의가 아닌가 했지만 그들을 묶어놓은 것이 어떤 강력한 물리적 힘이나 상벌제도가 아님을 유념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제사 의식과 설화에 대한 믿음만으로 스스로를 희생하면서까지 현대에는 비상식적인 전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축제는 매년 있어 왔지만 이 특별한 '미드 소마', 90년 만의 축제는 사실 살아 있는 구성원 가운데 목격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들의 삶들 주기는 72세에 자발적으로 마감되니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홀거 마을 공동체는 이 기괴한 의식에 대한 맹신과 매우 강력한 통제 수준을 유지해 왔다. 이름도 갓 태어난 죽은 사람으로부터 새로 태어난 사람으로 계승되어 예언자역의 장남을 낳기 위해서 엄격한 방책아래, 몇회의 근친을 행하는 소규모 사회. 구성원의 역할까지 개인의 적성과 취향에 따라 판정되는 것은 아니다. 오로지 출생아 주기와 성별에 따라 역할과 단짝이 명령처럼 하달되고 구성원들은 마치 부분품처럼 따라 더욱 만족합니다. 이런 사회를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 일견<1984>나< 멋진 신세계>식의 계획된 사회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파시즘 등에서는 홀이 구성원의 서로에 대한 헌신과 희생을 다 설명할 수 없다. 종교성이 무엇보다 강하게 작용하는 코뮌 정도로 소견할 수 있을까.이들이 대가족이라고 부르는 집단은 단순히 정치적 지향성과 경제적 이익에 얽매인 사람들의 집합이 아니다. 모든 사회가 그렇겠지만 그들만은 그 조건과 무관하게도 오로지 공감과 공명을 바탕으로 뗄 수 없이 결합된 1의 몸이나 다름 없는 것입니다. 1의 세포가 울면 나머지도 울고, 다른 1의 세포가 고통 혹은 쾌락을 느끼면 나머지도 함께 느끼고 있다. 대니가 마침내 혼자 울지 않고 사람들 앞에서 울며 sound를 터뜨렸을 때, 마야가 크리스티앙으로부터 정자를 짜냈을 때나 잉그마르 등 다른 지원자가 죽고 고통의 비명을 지를 때도 다른 동네 사람들은 마치 그 느낌과 상태를 속임없이 느끼듯 울부짖는다.대니가 자신의 슬픔에 공명해 주지 않았던 기존의 준거 집단을 완전히 버리기로 계획한 것은 이러한 "함께 운"과정이 판정적인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입니다. 그녀가 과거에 몸을 전부 sound였던 것 - 남자친구 친국이라는 개인, 도시, 문명 - 들은 공감은커녕 타인을 존중할 의지조차 별로 없다. 이런 비존중의 단적인 예는 크리스티안뿐 아니라 호르가의 조상과 이어지는 나무에 오줌을 싼 마크나 예언서를 몰래 찍으려던 조쉬(둘 다 너희들의 태도, 지극히 미국인다운 태도)에서도 나타났다. 아내 sound로부터 고통에 시달리고 있던 대니로서는, 홀가의 룰이 어느 정도 비이성적이고 비상식적인지 따질 겨를도 이유도 없었을 것입니다. 대가족을 잃고 남친나라의 무릎 위에 쓰러져 동물처럼 통곡하지만 정작 그 남자 친국은 돌처럼 꿈쩍도 않을 때부터 그녀는 거의 매일 울고, 그렇게 해서 그녀가 내심 가장 원했던 것은 함께 우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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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이 이야기의 결말은 대니의 모든 고통을 불태우는 승화를 뜻한다. 대니는 마을에 들어온 것이 집에 어두운 건물에서 성냥을 달았지만 죽은 동상의 환각을 보고그녀의 생애 1을 잊은 크리스티안은 나중에 볼품 없는 케이크 한조각을 들이대고 양초에 불을 붙였지만 계속 실패했어요. 고허가 보상받지 못하는 애정을 상징한 부처로 크리스티앙이기에 다른 외부인을 불태우고 죽인 대니는 예전의 인연을 자기 손으로 지운다. 불이 잿더미가 됨으로써 흰 옷의식은 끝나고, 노란 집 앞에 같은 삼각형의 꽃집을 입은 대니는 새로운 색깔의 새 삶을 선물받는다. 호르가는 곰(동물)을 적으로 하고 식물을 토템으로 하는 공동체이다. 이들의 시체를 가장해 본인 처리하는 방법만 보더라도 동물성, 짐승다움을 단죄하고 식물로 돌아가라는 뜻이 분명해 보인다. 그런 공동체에서 대니가 먹고 마시고 몸에 감은 것은 호르가가 그녀에게 준 축복이 본인임에 틀림없다. 카메라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는 그녀의 얼굴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그것이 얼마나 본인의 기괴한 것인지, 잔인한 것인지, 이성적이지 못한 것인지는 대니의 행복이라는 절대적 가치 앞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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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가) 종교와 자연에 대한 훌륭한 은유를 보여주는 영화였다. 실마리 찾고 조합하고 해석하는 1이 제1 즐거운 나의 취향도 너무 너무 당했다. 아리아스타의 화법이 이런 거라면 아무리 잔인해도 <유전>도 한번 시도해 보고 싶다.사이에 2)<레이디 맥베스>,<리틀 드러머를>에 이미 대단한 연기력을 인정 받은 후로ー렝스퓨풍망 아니라 나쁜 아닌 배우들이 크게 나오고 있는 동안 즐거웠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얄밉고 분별없는 쓰레기의 역할만 담당하는 윌 포르타나 굿 풀장에서 맡은 역할과 마찬가지로 다소 답답한 학자 스타 1윌리엄 잭슨 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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